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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는 효율적인 OO 수단? -- <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 독후감독서 2024. 1. 28. 12:48
『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은 약 150년 전에 출간된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쉽게 풀어서 설명하는 책이다. 저자 임승수 작가는 이 책의 서두에서 마르크스의 자본론에 대한 사람들의 세 가지 반응을 소개했다.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1. 사회주의/공산주의를 다루고 있을 것이다,
2. 너무 옛날 책이다,
3. 관심은 있는데 너무 어려울 것 같다.
우리 대부분은 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으면서도 자본주의가 무엇인지 잘 모른다. 저자가 지적했듯이, 잘 모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자본론을 읽어보려고 하지도 않는다. 물론 나도 그중 하나였다. 위의 세 가지 반응 중에서 난 어디에 속할까? 언뜻 1번처럼 보이긴 한데, 사실 그보단 “그냥 관심이 없었다”에 더 가까운 것 같다. 너무 공기처럼 당연해서 한 번도 의심해 보거나 궁금해한 적이 없었다.
독서모임이 아니었으면 집어들지 않았을 책이었지만, 일단 펼쳐보니 전에 없던 관심이 조금씩 생기기 시작했다. 자본주의의 핵심 개념은 무엇이고, 자본주의 체제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어떤 구조적 한계가 있는지를 알 수 있었다. 자본론 원전이 대체 얼마나 어려운 건지 잘 모르겠으나, 이 책은 정말 쉬워서 한 달음에 끝까지 읽었다. 적어도 원숭이한테 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약간 마음이 놓이기도 했다.
착취 vs. 이윤
『자본론』은, 자본주의의 작동 원리를 설명하면서 항상 ‘노동’을 가장 중심에 놓는다. 이 관점에서 노동자와 자본가 사이의 관계를 살펴보니 자연스레 ‘착취’라는 단어가 뒤따르게 된다. 반면에, 보통 주류 경제학자들은 ‘상품’과 ‘이윤’에 주목하는 것 같다. 마르크스나 경제학자들이나 대체로 비슷한 이야기를 하는데, 한쪽은 노동과 착취, 다른 한쪽은 상품과 이윤에 초점을 맞춘다. 너무나 극명한 온도차다. 마치 노동자와 자본가 사이의 입장 차이를 보는 듯하다.
점점 심해지는 불평등 문제
일을 해야 돈을 버는 사람은, 돈으로 돈을 버는 사람을 따라잡을 수 없다. 150년 전이나 지금이나 그 점은 변함이 없어 보인다. 자본론에서 지적하는 자본주의 시스템의 근본적인 문제가 지금도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인 것 같다. 십수 년 전만 해도 사람들이 그나마 역전의 희망을 가졌는데, 미국과 중국의 파워 게임으로 ‘세계화 시대’가 쫑 나버리면서 그 희망도 같이 쫑난 것 같다. 이제는 누구도 ‘자수성가’를 꿈꾸거나 말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앞으로는 어떻게 될까. 이대로 불평등이 더 극심해지다가 정말 혁명…이라도 일어나는 걸까? 그럴 수도 있을 것 같고. 아니면 그전에 ‘마더 네이처’께서 노하셔서 다 같이 망할지도 모르겠다.
이쯤에서 비관적인 상상은 접어두고, 화제를 돌려서 긍정적인 미래를 한 번 생각해볼까 한다.
자신만의 공장을 가질 수 있는 시대
한 5년 전이었나, 3D 프린터가 대중화되기 시작하면서 이런 얘기가 나왔다. “앞으로는 모든 사람들이 자신만의 공장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3D 프린터뿐만이 아니다. 개인이 충분히 구입할 수 있는 CNC 또는 레이저 조각기가 등장했다. Arduino, Raspberry Pi 등 오픈소스 하드웨어 플랫폼도 많이 나왔다. IT 분야도 마찬가지다. AWS 덕분에 가상 서버와 웹 서비스를 구축하기가 너무나 쉬워졌다. 또, 유튜브 같은 미디어 플랫폼도 있다. 덕분에 누구나 쉽게 개인 방송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즉, 대규모의 자본 없이도 개인이 생산 수단을 갖출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이 시점에서, 자본론을 어떻게 바라보면 좋을까. 생산 수단이 없어 남을 위해 일할 수밖에 없는 노동자와, 그들을 착취하는 자본가. 앞으로도 이 관계가 영원히 지속될까? 그렇지 않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여전히 누군가는 노동자 역할을 하겠지만, 평생 그러진 않을 것 같다. 어쩌면 내일은 그 사람이 자본가가 될 수도 있다.
데이터가 자본인 시대
학교 후배들과 커피를 마시다가, 모 핀테크 앱에서 유전자 분석 서비스를 무료로 해준다는 얘기를 들었다. 유전자 검사 전문 기관에서 해주는 거고 원래 비용이 5만 원 정도 한다는데, 그 비용을 핀테크 회사가 대신 내주는 모양이다. 검사 항목이 무려 수십 가지나 되었다. 탈모나 비만 가능성, 악력, 불면증 같은 것도 수치화해서 알려준다. 그냥 재미로 보면 딱 좋을 만한 수준이다. 아무튼 신기하긴 하다. 그런데 난 일단 건강 정보가 업체로 넘어가는 것이 신경 쓰였다. 혹시 걱정되지 않냐고 물었더니 “어차피 내가 직접 써먹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업체에서 그걸로 뭔 짓을 하던 내가 직접 피해볼 일은 없지 않냐”는 반응이 돌아왔다. 뭐…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네 하고 말았다. 하필 그때가 자본론 책을 읽은 직후였던지라, 그 뒤로 대화를 몇 번 더 곱씹어 봤다.
데이터(정보)는 또 다른 유형의 자본이다. 데이터로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누구나 데이터로 돈을 벌 수는 없다. 한 사람의 개인 정보, 이를테면 생체 정보를 가지고 돈을 벌기는 어렵다. 그 정보 하나만으로 뭘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게 한가득 쌓이면 얘기가 달라진다. 수십만 명의 데이터가 쌓이면, 그 안에서 다양한 걸 만들어낼 수 있다. ‘규모의 경제’라는 말이 자연스레 떠오른다. 아무튼 데이터는 한데 모이고 서로 연결될수록 더욱 강력한 가치를 만들 수 있다. 기업체는 대규모 자금을 동원해서 손쉽게 개개인의 데이터를 끌어 모을 수 있고, 그 데이터로 훨씬 더 큰돈을 벌 수 있다.
여기서는 또다시 ‘노동자-자본가’ 관계가 선명하게 보인다. 자본이 있어야만 생산 수단을 가질 수 있는 시대는 지났지만, 여전히 개인은 ‘착취’ 당하는 처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AI는 효율적인 OO 수단?
Chat GPT 등장 이후로 본격적인 AI 시대가 시작되었다. 빌 게이츠는 그의 블로그에서 “5년 내에 모든 게 바뀔 것”이라는 예언까지 했다. 그 변화가 벌써부터 너무 크게 체감되다 보니 어쩌면 3년 안에도 가능하겠다는 생각마저 든다. 앞에서 ‘개인이 확보할 수 있는 생산 수단’ 얘기를 했는데, AI도 당연히 여기에 속한다. 그런데 이건 마냥 긍정적으로 보기가 어렵다.
나는 그동안 AI 활용에 매우 소극적이었다. 아직은 기술적으로 시기상조라는 생각도 있었고, 내 데이터가 팔리는 것에 훨씬 더 예민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최근에서야 Chat GPT를 조심스레 써보기 시작했다. 더 늦으면 정말 뒤처지겠다 싶어서…. 내가 하는 대화가 모델 학습에 쓰인다는 걸 의식하기 때문인지 일단은 장난감 수준으로 다뤄보고 있다. AI가 효율적인 도구가 될 것이란 점은 분명히 알겠지만, 그게 혹시 내 개인 정보를 기업체가 마음껏 수집할 수 있게 도와주는 도구가 되는 건 아닐까 걱정된다.
AI는 엄청난 양의 데이터를 흡수하면서 진화하고, 엄청난 양의 데이터를 다루며, 또다시 엄청난 양의 데이터를 만들어 낸다. 개인이 잘 활용한다면 정말로 효율적인 생산 수단이 될 것이다. 검색어를 직접 입력해 가며 자료 조사를 하지 않고, AI가 정리해 준 자료를 검토하고 의사 결정을 내리는 데에 집중할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개인도 막대한 데이터를 가공해 돈을 버는 “데이터 자본가”가 될 수 있을지 모르는 일이다.
AI는 개인 정보를 기업체가 마음껏 수집하게 도와주는 효율적인 착취 수단이 될까? 아니면 개인의 효율적인 생산 수단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까? 정말 모르겠지만, 일단은 후자에 기대를 걸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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